'Something'에 해당되는 글 6

  1. 2008.12.24 켄지안 1
  2. 2008.12.15 아부오름(앞오름) 2
  3. 2008.12.14 양승목 1
  4. 2008.12.13 철학
  5. 2008.12.13 직업과 취미사이
  6. 2008.12.10 불면증 1

켄지안

2004. NewYork
켄지안님이 마지막으로 추천해 주신 내가 올렸던 사진

오늘 어떤 사진가가 문득 떠올라 그 사람 블로그까지 가 보았다. 레이소다에서 즐겨찾기를 가장 마음편히 할 수 있는 사람. 내 사진을 다시는 추천해 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린 만난적도 없고, 그 흔한 글 한줄 나눈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의 사라짐에 많은 충격을 느꼈었다. 오늘 그의 생각을 훔쳐보는 내내 마음이 움직인다. 그의 글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다른 탭에서 처음과 끝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존레논의 음악도 구슬프다. 우리의 관계를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비슷하게 느꼈는지 모른다. 암묵적으로 추천을 하고 혼자만의 응원이나 비평을 한다. 당신 시진은 참 따뜻하군요. 당신 사진은 참 솔직하군요. 그런데 이 사진은 조금 아쉽군요. 당신 글을 보니 참 유쾌한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군요. 이런저런 느낌. 한마디도 표현하지 못하고, 추천을 아꼈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사진을 보아 주던 사람.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아 주던 사람. 마냥 그렇게 밝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오늘 다른면을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가지 면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어떤 나도 나이고. 그 어떤 나도 내가 아님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밤이다.

아부오름(앞오름)

2008. Jeju


그날 아침 날씨는 제법 제주도 다웠다. 쉬러간 여행이었지만 비행기안에서 본 안내책자에 나와있던 아부오름이란 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 숙소에 도착하기 전 근처에서 두시간가량을 찾았지만 그 곳은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날은 비가오면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찾아갔다. 오묘한 날씨. 이런 날씨는 위와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겐 행운이다. 생각했던 것보단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기대가 컸을 뿐 마음에 든다. 그날은 몇가지 지도를 보고간 덕분인지, 그날 다시오라고 돌려보내서인지 금방 찾았다. 책자에서 본 그 풍경이 너무 보고싶은 마음에 뛰다시피 올라간 정상(정상 이라고 하기엔 땅과 너무 가까운 그 곳)에서 할 말을 잃었다. 더욱 세찬 바람, 안개인지 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습기, 언덕에 올라왔을 뿐인데 멀리까지 내려다 보이는 풍경, 어슴푸른 하늘과 구름 틈으로 간간히 보이는 보이는 햇빛, 밖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분화구속 동그랗게 자란 나무 무리와 그것들을 둘러싸고있던 보랏빛 풀들이 낯설고, 두렵고, 놀랍고, 신비로웠다.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지구인지, 다른별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디디고 바람을 견디며 서있는건지 모호하던 순간이었다. 떠나기전 다시 찾아간 그 곳은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이 있었다.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양승목

2003. Daegu

그와 나의 인연의 시작의 매개체는 '릴리슈슈의 모든것'이란 영화였다. 2003년 당시 영화와 사진에 빠져있던 나는 레이소다 개인공간에 링크된 그의 DVD리뷰 사이트에서 그의 글을 읽었다. 알고보니 대구 사람이어서 만나보고 싶었다. 사진이 좋아 그렇게 무작정 보고 찍고 버리고 하던 시기에 다른 사람 생각도 궁금하고 비슷한 취미의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학교내 사진동아리와의 교류도 생각해 보았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을 접었다. 아무튼 그 비가 오다 말다하던 날 동성로의 아카데미 극장 앞에서 그와 만나기로 한다. 영화, 사진 비슷한 두 공통점은 더욱 발걸음을 설레게 했다. 그의 필명은 씨네키루, (씨네마=영화) + (이키루=살다 라는 뜻의 일본어) 나는 당시 seize the day라는 필명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현재에 충실하자는 마음에서 였다. 그가 안내한 빈대떡집의 맛은 일품이었고, 가격 또한 사랑스러웠다. 우린 사진에 관한 지금에와선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말들을 나눴고, 술잔을 기울였다. 아마 영화 얘기도 많이 했을 것이다. 당시 기억나는 것은 처음만난 사람과 그렇게 빨리 친해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린 이미 마음을 열고 있었다. 지켜보니 승목이의 마음이 닫히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술집에서 사진에 대한 감정이 벅차올라, 취기에 주위분들에게 가서 사진을 좋아하는(거창하게 공부하는(?)이라 했던거 같기도 하다.)학생이라며 촬영허가를 받고 촬영을 하고, 격려를 들었다. 거나하게 취한 우리는 길거리로 나와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다. 그냥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 행복했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술취한 그 길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오락실에서 철권을하고 안녕.안녕.했다. 지금은 그당시 사진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다음날 아침에 카메라를 확인했을때, 뭔가 이상해서 들여다 보니 필름이 제대로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전날 난 생쇼를 한 것이다. 필름도 장전되지 않은 카메라를 들고서... 어쩌면 촬영이라고 할 수 없는, 오직 내 마음속에만 이미지를 남겼다. 우리는 그렇게 첫만남을 보냈고 그 후부터는 쭉 알고지낸 친구처럼 편했다. 나는 그의 바보같은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사실 바보같이 웃는 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참 비슷한것 같다. 비움으로써 누군가 채워 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바보같이 웃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그 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사랑, 이별, 여행, 사진등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그는 먼저 결혼을 하고  언제부턴가 멀리 떨어져 지내고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못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친구에게 문자가왔다. '애기방금나왔다 고맙다 친구들아 다너희들덕분이다.' 내덕은 거의 없는 것 같았지만, 항상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좀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철학

니체는 이렇게 물었다, 더 많이 일하면 행복해질까?
출처,원문: 21세기 민중자서전 '눈-길'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 걱정, 애정, 증오를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간다. 그것은 항상 작은 목표를 겨냥하면서 수월하고 규칙적인 만족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끊임없이 괴로운 노동이 행해지는 사회는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전이 현재 최고의 신성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아침놀>에서)


니체에게 직업의 귀천이란 없다. 연봉은 숫자에 불과하다. 대신에 삶의 비천이 있다. 반복 할수록 즐거움을 잃는다면 그것은 노예의 노동이고, 할수록 힘이 솟고 계속하고 싶은 '놀이'라면 그것은 고귀한 노동이다. 삶은 매번 반복된다는 엄정한 사실을 직시해보면 이는 더없이 현명한 척도이다. 

삶은 행복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바란다. 누가 이를 견딜 수 있는가.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으로 살아가는 자 뿐이다. 마치 아이처럼 노동을 '놀이'로 즐기는 자는 기꺼이 말할 것이다.  


"몇 번이라도 좋다. 오, 끔찍한 생이여, 다시 한 번!"

한때, 세상을 사는데는 국,영,수가 최고인줄 알았다. 그러나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일 뿐이란걸 뒤늦게 알았다. 도덕이나 윤리, 철학은 그냥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얘기를 어렵게 한다고만 생각했다. 철학과를 가면 철학관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누구도 나에게 그런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알아보지도 않았다. 국영수가 제일 중요하고, 과학(인문과학은 과학이란 생각도 못했다)적 사실이 최고 라고 생각했었다.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생각하는 방법은 물론, 생각할 틈을 안주려고 한다. 철학을 가르친다는 선생님도 철학이 없었다. 왜 그땐 선생님말은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을까? 책에 써있는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간혹 깨친 친구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땐 그냥 다른세상 친구라고 무시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나름 철학적 사고를 한 적도 있었다. 철학적이란것으로 구분짓는것이 무의미하긴 하지만, 가끔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르다가 내손을 보며 이게 왜 움직일까? 내가 뭘까? 나의 사고와 육체를 분리해 놓으면 어떤게 나인가? 둘다라면, 분리해서 존재할 수 있을까? 왜 살고 있는가, 산다는건 무엇인가? 죽는다는건 무엇인가? 지금생각해도 멍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4차원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준다. 그러곤 화장실에서 나오면 다 잊어버렸다. 


철학이란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목이다. 다시 전공을 선택하라면, 철학을 꼭 선택할 것이다(?)라는것은 아니다. 꼭 학문적으로 완성해야할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고하는게 모두 철학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역사가 반복되듯이 주류적사고도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물리적 교류가 전혀 없었던 고대 시대에도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생각을 하시던 분들이 많았다. 모든 시대에서 근본적인 생각은 모두 비슷하다고 볼 수 도 있다. 어떻게 보면 시대와 환경은 바뀌나 사람만 순환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름데로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나. 고도의 문명 사회나 초월한 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사회는 그냥 돌고 도는, 태어났기 때문에 본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공동체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돌고 도는 세상에서 먼저 생각했던 사람의 경험을 알고 시작하면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고 그 의견에 관한 비판적이나 동의적 사고에서 다시 한번 더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위의 글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니체의 사고를 참고한 글이 가슴에 와닿는다. 하지만 단순한 공감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결국 자기 철학이 될 수도 없고 감동을 줄 수도 없다. 누군가는 니체는 대단한 사람이고 그 사람의 사고를 인용하는 사람은 인용자일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위대한 철학자도 단지 먼저 태어나서, 먼저 그 생각을 골몰히 해서 유명세를 탄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노력이 절대 쉬운것은 아니지만 선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존재하는 생각들을 또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해체하고 조합하는 능력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생각은 자기 자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위대한 생각도 내 생각과 다를 수 있고, 달리 생각할 권리도 있고, 인간본위의 옳고 그름은 있을 수 없다. 그 속에 갇히면 그 것이 최고로 보이지만, 그건 그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나름데로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연한 사고는 그에 우선해야 할 것이다.

직업과 취미사이

나는 앞으로 뭐 해먹고 사나?
출처,원문: 애자일이야기


*좋아하는가?
다른 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기분이 왠지 울적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진절머리가 날 때 당신은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하고 나면 기분이 유쾌해지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던가요? 그걸 하면서 몰입하게 되나요?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아니 심지어는 내가 돈을 내고서라도 그 일을 하고 싶은가요?

*잘하는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당신은 훨씬 진도가 빠르고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나요? 남들에게서 그 일로 찬사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지속가능한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중에서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일로 남들에게서 감사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그 일을 남들에게 가치있는 형태로 변환(번역)할 수 있나요?

좋은 글이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좋아하고 잘 하고 지속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내용에 따르면 '좋아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남들에게도 가치가 있는 취미활동을 하며 먹고 살아라' 인듯한데, 언뜻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취미로 하는 것은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려우며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인해 즐길 수 있게된 것들이 많다. 먹고 살만 하니까 하는 것이다. 인적사항을 조사하는 항목에 대부분 취미,특기란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항목을 적는다. 이런 분야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받고 지속가능할 것 같아서 업으로 전향한다면, 지금의 경쟁구도에서도 특히나 문이 좁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특히 문화적인 분야는 더욱 그렇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사진,음악,영화만 보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꿈을 가지다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거나 무수한 경쟁속에 시들어져버리거나, 안전한 취미라는 활동으로 자위해버린다. 물론 취미로 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한때 인생목표에서 10년주기로의 직업변경을 꿈꿨다. 10년동안 꾸준히 하루에 몇시간씩만 투자하면 직업을 바꿀정도의 실력이 쌓일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지금이 아니면 해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해서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그것만 하루종일 하는 사람들과 경쟁이 될까? 인적 네트워크, 현장에서의 노하우, 정보의 양과 질, 나이먹음에 따른 가치하락등 점점 더 경쟁에서 도퇴되어 갈 것이고, 특정 직종외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클것이라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자원기반경제의 개념이 진정 현실이 될때는 가능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죽기전까지 근본적인 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여기에 어떤 질문을 더 포함시켜야 하는가?

*어느정도 타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노력해서 좋아하는 일로 만들 수 있는가?

다른 대안으로 현재 하고 있는일을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고, 일정한 양의 일을 양질의 컨디션으로 하는등의 방법으로 상기 항목에 맞춰 볼 수도 있다. 다만 과도한 시간적, 정신적 착취를 당하는 직업군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꼭 좋아하고 인정받는 일만 가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필요하고 어느정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순수하게 좋아하며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일도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첫번째 질문 '좋아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볼 것을 권한다. 그 일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또는 좋아 할 수 있을지, 해보기 전에는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일에 수반되는 보상-타인의시선,칭찬,우월감 등-을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너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 환상만가지고 직업을 쫓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정리해 본다.

불면증

2007. Sungnam

혼자만의 시간이 아쉬워 잠을 잘 수가 없다.